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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과 닮아있는 자연 염색, 김지희

더현대 2025. 4. 23. 11:21

 

흰 천에 물드는 삶의 색채

 

 

예술가이자 교육자인 김지희 명인은 자연염색을 널리 알리는 일에 일생을 바쳐왔다. 현대와 전통을 결합한 작품은 세계인을 매료시켰고, 지금은 오랜 세월 체득한 경험과 비법을 후학들에게 전파하는 데 여념이 없다. 흰 천으로 태어나 몇 번의 물이 들고, 다시 흰 천으로 회귀하는 과정이 인간의 생과 닮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관통한 후의 깊은 숭고함과 유려함을 보았다. 그의 시간이, 곧 자연염색의 시간과 같게 느껴졌다.

 


 

자연염색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연염색 모빌.

 

어린 시절 천에 쪽이나 홍화로 물을 들이던 어머니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신다고요. 그날 마주한 광경이 현재 대한민국의 자연염색이 명맥을 이어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 습니다. 자연염색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부모님 고향이 창원의 덕산이라는 곳이에요. 어릴 때 그곳에서 자랐죠. 숙모님과 어머님이 길쌈과 염색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전통 섬유의 제작 과정을 경험했어요. 그 옆에서 따라 해보기도 하면서요. 아버지가 마산에서 사업을 하실 때는 자연을 접하며 자랐어요. 1,000평이 넘는 땅에 아버지의 공장만 덩그러니 있고, 주변은 온통 숲이었거든요. 봄이 되면 꽃이 피는 숲 속에서 지내며 도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았죠. 꽃밭을 가꾸기도 하고, 잔디로 우리나라 지도도 만들면서요. 그러니 자연염색을 접하게 된 건 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대구시 동구에 자리한 자연염색박물관의 외관 입구 모습.

 

일본에서 부교수 자격으로 석사 후 연구원 과정을 밟을 때, 창작 과정에 앞서 일본의 뿌리를 가르치는 일본 대학교의 모습을 보고 자연염색을 떠올리셨다고 들었어요. ‘공장형 약품염색’으로 인해 전통 염색과 멀어지고 있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과 대조되어 아쉬움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대학교에서 응용미술을 전공했는데, 대학 교육과정에선 전통을 중요시하지 않더라고요. 서양의 영향을 받아 현대미술을 배웠죠. 그 교육을 받고 부교수가 되었을 때, 우리나라에 없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 일본으로 갔어요. 일본 동경예술대학교 대학원의 상위 과정인 연구원 과정을 수료하기 위해서죠. 일본의 교육은 전통부터 시작되더군요. 민예관에 가서 전통의 뿌리를 배우고,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고미술 시장에 가서 구매하게 하고요. 일본에서 1년 동안 공부하면서 전통부터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선 학생들에게 전통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뿌리부터 배우기 시작하니 학생들은 서구 작품을 모방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국내에도 좋은 문양과 디자인의 소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렇게 섬유의 종류와 조직도부터 시작해 분야별로 자신들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됐어요. 단지 최근 트렌드, 즉 사조와 색채가 어떤 흐름인지를 보기 위해서만 서양 서적을 참고하도록 했죠. 전통만 공부하면 외곬으로 빠지기 쉬우니까요.

 

자연염색박물관에는 명인의 작품과 유물, 기증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쪽씨(염료 자원으로 재배하는 한해살이풀로 잎을 남색 염료로 사용)를 다시 구해 와 널리 전파하셨다고요. 쪽씨를 가져오신 그 일이야말로 대한민국 자연염색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에서 염직 과정을 수료하고 돌아오면서 쪽씨 5알을 얻어 왔어요. 쪽씨는 원래 우리 것이었지만 일본으로 건너가고 한국에서는 사라졌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일년초인 쪽씨가 죽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가꿔야 했어요. 지금은 동대문에만 가도 쪽씨가 있지만 옛날에는 그게 얼마나 귀했는지 몰라요. 경북과 영남 지역에는 제가, 서울에는 예용해 선생님께서, 경남 지역에는 성파 스님께서 얻어 온 쪽씨로 저변을 확대했어요. 이 세 사람이 얻어 온 쪽씨가 전국으로 퍼진 거죠.

 

국내 최초로 자연염색박물관을 설립하셨어요. 당시 소유하고 있던 땅을 팔고 퇴직금을 모두 쏟아부어 박물관을 지으셨다고요.

대학교수 자리에서 정년퇴직하기 3년 전부터 박물관 설립을 준비했어요. 박물관 규모가 겉으로 보기에는 크지 않지만, 기와지붕을 올리고 황토벽을 쌓는 등 전통적 방법으로 건물을 짓다 보니 비용이 많이 들었죠. 그때만 해도 박물관을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요. 자연염색박물관에서는 염색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자연염색박물관 내 민속염직도구실에서는 염색의 기초가 되는 도구를 전시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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