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개관 3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한 전시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현대백화점이 함께하여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요. 20세기 예술 사조 중 하나인 누보 레알리즘(Nouveau Realisme)을 대표하는 유일한 여성 작가로 평가 받는 프랑스 현대미술가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전시가 바로 그것! 6월 30일부터 9월 25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전시회를 직접 찾아가 보았어요.
니키 드 생팔은 개인적이고 복잡하게 얽힌 사연을 사물과 이미지들의 조합을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활력 넘치는 이미지와 화려한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는 대표작 '나나'는 전 세계 곳곳의 설치되어 여성성과 모성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2006년 개최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시에 이어 12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단독 전시입니다. 그녀의 친구이자 컬렉터인 요코 마즈다(Yoko Mazda)의 소장품 127점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개인적 상처와 치유', '만남과 예술',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 크게 세 가지 파트로 나뉘어 조각, 영상, 드로잉, 포스터 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촬영이 제한되는 다른 전시와 달리 촬영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 자유로운 관람과 감상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을 거예요. 자, 자유로운 예술혼을 불태우며 여성으로서의 굴레를 뛰어넘고자 했던 니키 드 생팔의 전시회를 본격적으로 둘러볼까요?
# 개인적 상처와 치유에 대한 기록
화사한 컬러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어둑어둑한 전시장에서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그녀를 미술계에 처음으로 주목 받게 만든 '사격회화(Shooting Painting)' 시리즈입니다. 이 작품들은 물감이 담긴 깡통이나 봉지를 부착한 석고 작품에 총을 쏘는 방법으로 제작했는데요. 기괴하다 못해 그로테스크하게까지 느껴지는 작품들에는 그녀의 개인적 상처와 치유가 오롯이 담겨 있다는 사실!
니키 드 생팔은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받은 성적 학대와 어린 나이에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강요 받은 불행한 경험들이 이어져 신경쇠약과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미술 치료를 계기로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요. 그녀는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자신이 느꼈던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 억압을 치유한 예술의 힘을 대중과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사격회화’입니다. ‘사격회화’ 작품을 둘러보는 내내 총을 쏘아 분노를 표출하고, 개인적 고통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답니다.
전시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그녀의 대표작 ‘나나(Nana)’ 시리즈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풍만한 여성의 신체를 과장해 부각시킨 조각상은 화려한 컬러와 역동적인 포즈로 시선을 사로잡았는데요. 프랑스어로 ‘여자아이’라는 뜻의 ‘나나’는 전통적인 미의 고정관념을 뒤집으며 여성 본연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해요. 춤을 추거나 다리를 활짝 벌리고 물구나무 하는 ‘나나’들은 마치 자신을 옥죄던 사회적 틀에서 벗어나 삶의 기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 다양한 인연을 만나며 성장하다
두 번째 전시장은 '만남과 예술'을 주제로 한 일러스트와 조각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의 연인과 친구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경험들을 엿볼 수 있는데요.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낳았고, 이는 더 나아가 작품 세계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평생 함께했던 파트너이자 두 번째 남편이었던 스위스 조각가 장 팅겔리(Jean Tinguely)는 그녀가 조형적 작품을 시작하고 현실화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조력자입니다. ‘당신은 나의 어떤 점을 가장 좋아하나요?’, ‘내 사랑, 당신은 뭐하나요?’ 등 그와의 만남을 주제로 한 일러스트 작품들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풋풋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어 미소 짓게 됩니다.
우연한 계기로 그녀의 컬렉터가 된 일본인 요코 마즈다와 20년간 주고 받은 그림 편지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요. 드로잉, 콜라주, 판화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한 그림 편지 속에는 개인적인 고민부터 작업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 “미소국 만드는 법을 알려줄래요?”, “예루살렘 ‘노아의 방주’를 위한 모형을 마쳤어요” 등의 구절에선 국경을 뛰어넘은 두 사람의 우정과 깊은 교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요코 마즈다는 니키 드 생팔 외에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지 않았고, 작품 또한 한 점도 팔지 않았다고 해요. 일본 도기치 현에 세계 유일의 니키 드 생팔 미술관까지 건립했을 정도니 얼마나 든든한 조력자였는지 가늠할 수 있겠죠?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생기 발랄한 컬러를 입은 개성 넘치는 일러스트였는데요. 조각으로 잘 알려졌던 그녀였기에 더욱 색다르게 느껴졌답니다.
3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부처상도 눈 여겨 볼만 합니다. 색색깔의 유리와 세라믹 조각으로 모자이크 작업한 ‘부다(Buddha)’는 조명에 빛을 받아 영롱한 빛을 내고 있었는데요. 요코 마즈다의 초대로 첫 방문한 교토의 한 사원에서 마주친 부처상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을 전시장에 들여오기 위해 문을 뜯고 공사할 만큼 공을 들였다고 해요. 그 정성이 무색하지 않게 작품이 자아내는 존재감은 그야말로 압권 그 자체!
# 대중을 위로하는 상징을 재현하다
마지막 전시장에서는 니키 드 생팔에게 평생 꿈이었던 ‘타로 공원(The Tarot Garden)' 작업을 영상과 모형으로 만나볼 수 있어요. 그녀는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구엘 공원(Guell Park)’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 남부 지방인 토스카나(Toscana)에 거대한 규모의 조각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2002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여 년에 걸친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한 공원은 1988년 정식 개장했는데요. 신화와 전설을 혼합한 상상력으로 만든 타로 공원은 지금까지도 환상적인 문화공간으로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기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타로 조각 작업을 위해 그렸던 드로잉을 실제 모습과 비교하며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할 거예요.
이 밖에도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구조가 돋보이는 의자 시리즈도 놓쳐서는 안 될 볼거리입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것! 원목에 색유리 조각으로 모자이크 작업한 ‘날개를 펼친 올빼미 의자’란 작품인데요. 작품 명 그대로 올빼미를 재해석해 형상한 이 의자는 자유롭고 대담한 작가의 상상력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자신의 삶을 통한 희로애락을 색다른 시선과 영감으로 포착한 니키 드 생팔. 이번 전시에서는 그녀의 영혼처럼 자유롭고 생동감 넘치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 전시를 통해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로워지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듯합니다.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해방과 자유를 꿈꾼 니키 드 생팔을 만날 수 있는 ‘니키 드 생팔 - 마즈다 컬렉션’ 展은 9월 25일까지 이어지니 놓치지 마세요!
작가소개
니키 드 생팔은?
1930년 프랑스 귀족 출신의 아버지와 미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5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니키 드 생팔. 여성지 ‘보그’와 ‘엘르’ 등 사진 모델로도 등장했을 만큼 매혹적인 외모를 지닌 그녀는 유년 시절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겪은 상처와 18세라는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결혼생활로 인한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미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예술이 지닌 힘을 깨닫게 되었고 원래 꿈이었던 연극인이 아닌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후 1961년 ‘사격회화’를 통해 현대미술계에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서, 화려한 색채와 활력 넘치는 이미지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나나’ 연작 작업에 주력합니다. 그리고 41세가 되던 1971년, 예술적 동방자인 팅겔리와 두 번째 결혼을 합니다.
그녀를 사랑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나나' 시리즈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작업물이 배출한 석유화학물질이 38세부터 시작된 폐 질환과 말년의 천식과 폐기종까지 그녀를 서서히 병들게 만들었던 거죠. 그럼에도 그녀는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1980년 퐁피두 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12살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행 당한 일을 그림과 함께 담은 회고록 <나의 비밀(My Scret)>을 프랑스어로 출판해 큰 방향을 일으키기도 해요.
그리고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오랜 시간 염원이었던 '타로 공원'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합니다. 타로 공원 내 ‘퀸(The empress)’라는 집을 만들어 생활하면서 작업을 이어갑니다. 그녀가 영감을 받았던 가우디의 ‘구엘 공원’처럼 재정적 지원을 받지 못했기에 공사 중간중간 가구와 조각을 만들고 판매해 자금을 마련했다고 해요. 1977년부터 24년 간 이어진 대장정은 1988년 정식 개장하며 드디어 끝이 납니다. 그리고 그녀는 타로 공원에 자리한 집 ‘퀸’에서 머물며 2002년 생을 마감합니다.
전시 꿀 TIP
‘니키 드 생팔 - 마즈다 컬렉션’ 展 은 사진 촬영이 가능해 작품을 더욱 친숙하게 즐길 수 있답니다. 니키 드 생팔의 자유분방한 작가 정신을 오롯이 느낄 수 있도록 전시장 내 모든 작품의 촬영을 허가한 것인데요. 작품을 둘러보는 내내 사진을 찍으며 전시에서 느낀 감동을 그대로 담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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