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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찾던 스니커즈

 

 

 

“Keeps beauty through years of use수년간 신어도 고유의 아름다움이 유지됩니다”. 2018년 첫 텀블벅 펀딩을 진행한 캐치볼의 제품 소개에 적힌 문구다. 일본 오카야마현 쿠라시키 함푸Kurashiki Hampu의 컨버스 원단을 사용해 오랜 세월 그 아름다움과 품질을 유지하는 캐치볼의 가치를 잘 드러낸 문장이다. 캐치볼은 기존의 컨버스화가 지닌 단점을 모두 상쇄했다. 얇고, 잘 찢어지고, 발이 아픈 컨버스화가 아닌, 탄탄하고 편안한 내구성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불과 5년 만에 명실상부 국내를 대표하는 신발 브랜드가 된 캐치볼. 대구 봉산동에 위치한 캐치볼의 유일한 오프라인 매장이자 본사에서 이경민 대표를 만나 캐치볼의 매력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오랜 세월 그 아름다움과 품질을 유지하고자 하는 캐치볼의 가치가 담긴 슬로건이 적힌 캐치볼 오프라인 매장 겸 본사의 외관.

 

캐치볼 이전에 수제화를 제작했다고요. 언제부터 신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신발 산업에 뛰어들었나요?

군대를 전역한 후에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어요.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는데,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선 취업보다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2013년 즈음이 대학에선 창업 동아리가 한창 지원금을 많이 받던 시기였어요. 아이템 선정을 고민하다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신발로 하면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운동화는 무조건 대량생산이더라고요. 하지만 자본금이 없었기에 한 켤레씩 제작할 수 있는 수제화를 택했죠.

 

신발 산업 하면 국내에선 부산이 유명해요. 그럼에도 대구에 기반을 잡은 이유는 대구가 고향이기 때문인가요?

겁이 많아서 대구를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서울처럼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들더라고요. 대구에서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임대료나 물가 등 여러모로 더 낫다고 생각했죠. 신발 산업이 부산이 유명하다는 것도 처음엔 몰랐어요. 좋아만 했지 무지하고 무모했던 거죠. 그저 인터넷 검색창에 ‘수제화’라고 입력해서 나온 한국수제화협회 같은 곳에 무작정 전화하고 찾아갔는데, 운이 좋았어요. 금강제화에 다니던 개발실장님이 은퇴 후에 고향인 대구로 다시 오셨다고 소개를 받았거든요. 정말 명인이세요. 덕분에 설계·개발·제작 등 모든 과정을 배우면서 할 수 있었죠.

 

 

 

대구 봉산동에 자리한 캐치볼 오프라인 매장 겸 본사 내부.

 

당시 대구의 신발 산업 인프라는 충분했나요?

운동화 같은 대량 제작 신발 산업 시설은 주로 부산에 갖춰져 있지만, 수제화였기에 부산 대신 서울 성수동에서 제작했어요. 대구가 아무리 섬유산업이 발달했다고 해도 신발과는 완전 별개였어요. 인프라가 전무한 대구에서 기반을 쌓아 올리기엔 제가 가진 것도, 아는 것도 전혀 없었어요. 다른 지역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죠.

 

야심 차게 수제화 사업을 시작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요?

2015년부터 시작한 수제화 사업은 완전히 망했어요.(웃음)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물론 하이엔드 제품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클래식’ 아이템들은 기본적으로 전통성이라는 베이스가 있어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물론 젊은 사람이 수제화를 만든다니까 처음엔 관심 갖는 분도 있었지만, 사회는 냉정하잖아요. 그런 이유로 구매하진 않죠. 더욱이 구두 한 켤레당 제작 비용만 10만 원이 족히 넘어서 수지 타산도 맞지 않았어요. 시중에 고품질의 가성비 좋은 구두가 많으니, 저희 제품을 구매할 이유는 없을 테고요. 수제화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니 나와 어울리지 않는 제품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어요.

 

 

 

소재의 전통성을 제품에 녹이는 등 고품질 소재만을 사용하고자 하는 캐치볼.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스니커즈로 품목을 변경하면서 다시 도전했어요.

이미 대출금만 3억이라 포기할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계속 나아가야 했고, 수제화 대신 운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해졌죠. 그러다 은인들을 만났어요. 부산에서 제화용 컨버스 원단을 제작하는 공장 실장님이 공장 시설을 이용해 컨버스 신발을 제작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시더라고요. 생산 기반이 해결되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리고 ‘캘리브랜드CLB’라는 브랜딩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가 있어요. 한국의 1세대 편집숍이라 할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마켓’과 대구의 명물 ‘커피명가’도 이곳에서 브랜딩했죠. 캘리브랜드에 브랜드 디자인을 의뢰했을 때 샌프란시스코 마켓 한태민 대표님을 연결해주셨고, 한 대표님은 일본산 고급 컨버스 원단을 추천해주셨죠. 모든 기운이 저를 스니커즈로 끌어당기는 듯했어요.

 

그렇게 ‘캐치볼’이란 브랜드가 탄생했네요. 브랜드 스토리텔링이 예사롭지 않던데요.

전문가의 힘입니다. 캐치볼은 샌프란시스코 마켓에 입점해 판매할 수 있었어요. 샌프란시스코 마켓은 그간 해외 브랜드만 소개했기 때문에, 방문한 고객들이 ‘해외에서 또 좋은 브랜드 가지고 왔나 봐’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게 콘셉트였죠. “짠~ 해외 브랜드가 아니라 국내 브랜드였습니다. 심지어 대구 브랜드입니다.(웃음)” 하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싶었어요. 브랜드명은 캘리브랜드에서 추천해준 여러 후보 중에 부르기 쉽고 기억하기 좋은 ‘캐치볼’을 택했죠. 그 후에 ‘1950년대 군용 운동화’라는 구체적인 콘셉트를 토대로 2종의 초기 제품을 제작했어요. 스니커즈 앞코에 울퉁불퉁한 디테일은 ‘벌크나이즈드Vulcanized’라고 하는데, 이건 군인들이 신발로 빨리 흙을 파내야 해서 생긴 거예요. 이런 이야기를 브랜드 히스토리에 녹여 넣는 거죠.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우리 제품에 어떻게 담겼는지 설명하는 과정이 정말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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