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9세기 말 파리의 한 전시장에서 모네의 <인상, 해돋이>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비평가들은 이를 '미완성된 낙서'라며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조롱조 비평에서 유래한 '인상주의'라는 이름은 현대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여는 영예로운 명칭으로 남았죠. 오래전 모네가 수련 연작을 처음 선보였을 때의 충격은 2025년 더현대 서울 ALT.1에서 열린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빛, 바다를 건너다>전의 감동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상주의의 대가로 불리는 클로드 모네부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메리 카사트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우스터미술관의 방대한 소장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럽 인상주의의 재현이 아닌,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대륙에서 꽃피운 예술적 진화의 여정을 보여주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클로드 모네, 〈수련〉, 1908년, 캔버스에 유채, 94.8 × 89.9 cm, 우스터미술관 _Claude Monet_Nympheas(Water Lilies)

 

 

 

특히 이번 전시는 현대와 공명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합니다. 인상주의가 태동했던 19세기 후반은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동기였습니다. 증기기관과 철도가 세상을 바꾸고, 도시화가 가속화되던 시기로, 당시의 불안과 흥분은 디지털 혁명과 AI 시대를 맞이한 오늘날의 우리와 묘하게 닮아 있죠. 이런 격변기에 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의 빛과 색채를 포착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단순한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면이 아닌,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보내는 150년 전 예술가들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그들은 변화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기회이며, 그 아름다움은 우리의 일상 속 매 순간에 존재한다는 걸 상기시킵니다.

 

마티아스 바섹Matthias Waschek 우스터미술관장은 ”인상주의 작품들은 급격한 변화가 주는 기쁨을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고 운을 뗐습니다. 변화에 지친 우리가 예술을 보면서 '아, 나는 안전하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는 거죠. 또 “기후 위기, 전쟁, 경제적 불안 등 다양한 요소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듯 우리도 이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마음의 평안을 얻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모네의 <수련>이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풍경화가 아니라 영원한 순간의 포착이기 때문일 겁니다. 인상주의의 태동과 발전을 비롯한 이번 전시의 면면을 그에게 물었습니다.

 


 

Interview

|

 

 

 

마티아스 바섹 | 우스터미술관장
독일 출생의 마티아스 바섹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 뉴잉글랜드 우스터미술관(Worcester Art Museum)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스터미술관은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미국 및 국제 인상주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뛰어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다.

 

 

 

—  이번 전시는 서울을 대표하는 백화점인 더현대 서울에서 열립니다. 리테일 공간에서의 전시라는 점에서 미술관에서와는 달리 기획한 부분이라면.

우리는 항상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미술 작품을 안전하게 보존합니다. 특히 습도와 보안이 핵심인데, 더현대 서울은 미술관과 같은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백화점에서 인상주의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저는 이 시도가 여러 이유에서 뜻깊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더 많은 사람의 일상에 예술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죠. 무엇보다 인상주의는 ‘백화점’과 ‘쇼핑몰’과 함께 등장하며 성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이 두 가지 모두 파리에서 시작되었지요. 또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정찰제로 판매되는 상품이 등장했는데, 그전까지는 항상 가격을 흥정해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세기 백화점과 쇼핑몰에는 골동품이 포함되어 있었고, 미술 전시도 열리곤 했죠. 즉, 프랑스어에서 ‘Fermer la boucle'라는 관용구의 의미처럼, 한 바퀴를 돌아 처음 시발점으로 돌아간 셈입니다. 다시 말해 예술과 상품 판매가 한 공간에서 이루어졌던 역사적 모델로 다시 돌아온 것이죠.

 

 

차일드 하삼, 〈프랑스 정원에서 꽃 따기〉, 1888년, 캔버스에 유채, 71.1 × 55.1 cm, 우스터미술관_Childe Ha

 

 

—  인상주의는 유럽에서 발아하고 미국의 자연에서 피웠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인상주의는 산업화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각 나라가 산업화의 일정한 수준에 도달할 때면 자연스럽게 인상주의의 흔적이 보이기 시작하죠. 어떤 나라에서는 그 시기가 조금 늦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더 빨랐고요. 산업화와 사진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상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했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환경을 묘사하는 방식은 지역에 따라 굉장히 달랐습니다. 가령 프랑스, 독일, 미국처럼 산업화가 진행된 각 나라에서 화가들은 변화하는 주변 풍경을 담아냈죠. 결국 인상주의가 다룬 풍경들은 각 지역의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향수를 느끼며 바라보던 풍경들은 철저히 지역적이었습니다. 산업화로 인해 사라져 가던 농경 문화 또한 지역마다 다르게 표현되었고요.

 

— 인상주의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 지역의 문화적 특성과 융합되었다고 생각하는지요.

인상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산업주의 즉 당시 서구 세계에서 가속화된 산업화가 인상주의의 중요한 근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물감이 튜브 형태로 산업적으로 생산되지 않았다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인상주의 작품을 보면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는 산업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지요. 반면 어떤 그림들은 마치 변화가 없는 듯, 산업화 이전의 자연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처럼 묘사하기도 하죠. 이러한 긴장감 속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 바로 사진입니다. 사진은 1830년대에 등장했고, 1860년대에 이르러 순간을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는 기술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인상주의가 등장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며 인상주의는 사진과의 경쟁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해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사진이 한순간을 포착할 수 있듯, 인상주의 화가들 역시 순간적인 장면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프랑스에서 발전한 인상주의의 기법은

국제적으로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추고 있습니다.”

 

— 우스터미술관의 중요한 컬렉션이 소개되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 관객이 놓치지 말아할 작품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시된 모든 작품이 다 뛰어나기 때문에 딱 하나를 꼭 보시라 말하는 게 쉽지 않네요. 하지만 저는 독일 출신이고, 이번 전시에 여러 독일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어서 개인적인 편애를 드러내 보겠습니다. 특히 막스 슬레보그트Max Slevogt의 자화상과 로비스 코린트Lovis Corinth가 그린 아내와 함께 있는 거울 속 자화상은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작품의 붓 터치는 전통적인 인상주의 기법과는 다소 다르지만, 순간적인 찰나를 포착하는 방식은 매우 유사합니다. 막스 슬레보그트의 자화상을 보면, 그의 입에 물린 시가 끝에 살짝 빛나는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로비스 코린트의 작품은 말 그대로 연기와 거울의 효과를 활용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그림을 보면 처음에는 아내의 머리 뒷모습이 보이지만, 거울 속에서는 아내의 얼굴과 화가 본인의 얼굴이 함께 비칩니다. 거울을 활용한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죠.

 

—  우스터미술관의 소장품을 만나볼 한국 관객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우스터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들과 우리의 보물 같은 컬렉션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큰 영광입니다. 특히 지금처럼 여러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에 이런 문화적 교류가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앞으로도 이러한 교류가 더욱 깊어지고 강해지기를 바랍니다.

 

 

 

CHECK POINT

 

 

1 당대 프레임까지 그대로 보존된 원화들

이번 전시에서 중요한 점은 작품이 원래의 프레임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작품 뿐만 아니라 프레임이 그림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그리고 프레임 자체에도 얼마나 많은 정성이 담겨 있는지 살펴 보세요. 일부 작품의 프레임은 프랑스 바로크 양식(루이 13세, 루이 14세, 루이 15세 스타일)을 반영한 것이고, 다른 일부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제작되었습니다. 지역별로 차이가 나타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막스 슬레보그트의 프레임은 베를린 스타일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당시 베를린은 독일의 수도였으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프레임 디자인에도 묻어납니다. 반면 다른 프레임은 의도적으로 절제된 디자인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직접 비교해 보시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겁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피어난 인상주의가 유럽과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 이르기까지 각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변화했는지 만나 보세요.

 

 

 

 

2 흔히 볼 수 없었던 이색 인상주의 작품들

 

드윗 파샬Dewitt Parshall’의 작품 <허밋 크릭 캐니언>은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해 건조한 풍경을 묘사한 드문 예시입니다. 보통 인상주의 작품들은 대부분 프랑스, 독일, 미국(뉴잉글랜드) 등 대부분 습한 기후의 풍경을 많이 그려서 공기 속에 마치 습기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미국 남서부는 극도로 건조한 지역인데, 그런 환경에 인상주의적 기법을 적용했다는 점이 정말 뛰어난 지점입니다. 관객 분들이 꼭 이 작품을 주의 깊게 감상하길 소망합니다.

 

 

 

 

3 미술관 무대 뒤의 이야기

20세기 초 유럽 인상주의 열풍이 미국을 강타하면서 관련 작품들의 유입이 가속화되었는데요. 우스터미술관은 설립 초기부터 인상파 작품 수집에 주력해 왔습니다. 특히 우스터미술관이 1910년 모네의 거래상 뒤랑 뤼엘로부터 구입한 <수련>은 상징적 연작 중 미술관이 최초로 소장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닙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우스터미술관이 <수련> 컬렉션 구매와 관련해 나눈 19건의 서신과 전보를 공개합니다. 서신들은 미술관이 세 차례에 걸쳐 모네의 '수련' 연작 구매를 요청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가격 정찰제가 없었던 시절 그림을 거래하기 위해 주고받는 서신 내용 속에서 당대 미술 시장을 보다 가까이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인상파, 모네에서 미국으로 : 빛 바다를 건너다

전시 기간 : 2025.02.15 ~ 2025.05.26

전시 장소: 더현대 서울 ALT.1

주최: 한국경제신문, 우스터미술관

기획: 클레어 휘트너, 우스터미술관 큐레이터, 오은수, 한국경제신문 큐레이터

협력: 더뮤지엄박스, 한경아르떼 TV, 한국경제매거진

후원: 주한미국대사관

 

 

예매하기

 

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