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에 담은 진심
12년 전, 사양산업으로 여겨지던 대구 섬유산업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브랜드가 등장했다. 양말 전문 브랜드 ‘1507’이다. 1507은 정직한 원사로 정직한 과정을 거쳐 양말을 제작한다. 원가를 낮추고 마진을 높일 수도 있지만 제대로 된 실과 부자재를 활용해 대구 공장에서만 제작한다는 자부심을 지키고자 한다. 그렇게 만든 양말은 많아야 하루에 10켤레를 판매하던 과거와 달리 이제 한 달에 40만 켤레는 거뜬히 판매한다. 양말이란 한 우물만 판 지 어언 12년, 지금 1507은 어떤 마음을 양말에 담고 있을까?
‘1507(일오공칠)’은 부친께 처음 양말에 대해 배우러 간 창고 번지수라고 들었어요. 어떻게 사업의 대를 이으면서, 양말이란 단일 품목에만 집중하게 됐나요?
아버지가 대구에서 오랫동안 양말 공장을 운영하셨어요. 지금은 재개발로 없어지긴 했지만 그 공장 주소가 ‘1507-42번지’였거든요. 대를 이어간다는 의미에서 번지수에서 브랜드 이름을 가져왔습니다. 대구 지역 양말 공장을 돌아다녀 보니 캘빈 클라인, 랄프 로렌, 유니클로 등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 제품을 많이 제작하더라고요. 라이선스 사업은 생산 규모 면에선 좋지만 언제든 생산지가 다른 나라로 바뀔 수 있다는 불안정함이 있어요. 이렇게 좋은 실력으로 다른 브랜드에 납품만 하는 게 너무 아까워 우리 브랜드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엇보다 양말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유니클로 오프라인 매장을 가보니 국내 스파 브랜드와 달리 양말 섹션이 엄청 크더라고요. 양말에 이렇게 큰 구역을 할당한다는 건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의미죠.
덕분에 대구 섬유산업의 맥이 이어지고 있어요.
대구가 고향이라 어릴 때부터 대구의 양말 공장을 보며 자랐어요. 대구는 특이하게 가정집과 공장이 결합된 형태가 많아요. 지상은 가정집으로 사용하고 지하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방식이죠. 밖에서 보면 공장이라고 생각하지 못해요. 섬유산업의 중심지인 만큼 예전엔 이런 공장이 수백 개나 되었지만, 지금은 그 수가 많이 줄었어요. 여전히 이곳에서 20~30년 넘게 양말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솜씨를 보니, 이분들과 함께한다면 무조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점점 1507의 규모가 커지니까 과거 섬유산업의 영광을 되살리고 싶은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사양산업의 하나로 떠나보내긴 싫습니다.
양말도 소재가 이렇게 다양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메시’나 ‘뱀부(대나무)’ 소재로 만든 양말은 처음 봤어요. 1507 양말은 형태는 기본에 충실하지만 소재는 무척 다양해요.
시장조사를 했는데, 국내 양말 브랜드 가운데 판매율이 높은 제품은 디자인이 멋있더라고요. 그런 디자인 전문가들을 제가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돌고 돌아 ‘기본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죠. 한 시즌이 지나면 해지는 양말이 아니라 오래오래 신을 수 있는 품질 좋은 기본 흰 양말이죠. 그렇게 흰 양말 판매가 안정화된 후 소재를 다양화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와 아버지 지인들께서 엄청 도움을 주고 계세요. 대나무 양말도 1980년대에 아저씨들이 많이 신었다고 아이디어를 툭툭 던져주셨죠. 구멍이 잘 나는 대신 신으면 정말 시원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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