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다
“미술관이 시민들과 미술의 언어로 소통하고 사랑받기 위해선 다정하고,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대구미술관의 최은주 관장은 말한다. 미술관의 규모보다 미술관이 얼마나 지역민의 삶과 밀착돼 있는지, 지역민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지가 중요하다고. 그의 바람대로 대구미술관은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전시 기획으로 가득하고, 대구의 얼을 귀하게 담아내며 시민들 마음속 깊이 소중한 지역 미술관으로 아로새겨지고 있다.
한국 근대미술을 기획하려면 무조건 대구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데, 한국 미술사에서 대구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관장으로 재직한 10년 동안 한국 근대미술 관련 기획을 할 때마다 대구를 방문했어요. 대구는 선각자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움직임이 항상 꿈틀거리던 곳이에요. 1922년 서예가 서병오 선생이 결성한 ’교남시서화회’부터 자발적인 문화 예술 활동을 전개했죠. 무엇보다 한국전쟁 이후 작품을 잃어버려 없어진 지역이 많은데, 대구는 피해가 덜해 소장가들이 보유하고 있던 중요 작가들의 작품이 잘 보존됐다는 점이 중요해요. 한국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 온 예술가와 대구의 미술가들이 교류하면서 더욱 풍부한 미술 사조를 일궈냈고요. 근대미술뿐 아니라 현대미술사에서도 대구는 의미가 아주 큽니다.
2019년에 임기를 시작하면서 대구미술관의 ‘전시 기획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어요.
전 세계 미술계는 매우 복잡다단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신예 스타 작가가 탄생하는가 하면, 거장이 영면에 들기도 하고, 새로운 사조가 드러나기도 하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창의적 소재를 끄집어내 고유하고 차별화된 것을 보여주는 일이 전시 기획이거든요. 대구미술관에 와 보니 전시 기획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우리 미술관에 적합한 소재를 발굴해내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시스템이 없으니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나는 사례가 많았어요. 그래서 아예 ‘전시 회의’라는 판을 깔았죠. 기획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도 창출하고 기획안에 대해 서로 진단하고, 토론과 평가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어요. 시스템이 정착돼 벌써 2024년 기획까지 어느 정도 마무리한 상태입니다.
관장님이 생각하는 좋은 전시 기획이란 어떤 것인가요?
‘창의적인 기획’이에요. 창의라는 건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발현된다고 봐요. 지난해에 개최한 <때와 땅> 전시가 좋은 예죠. 질곡의 역사와 함께 한 시대를 일군 대구 미술인의 행적과 극복 과정, 그리고 그들이 꿈꾼 예술의 이상과 시대정신을 담고자 했어요. 이 전시는 대구의 지역성이 두드러지고 대구의 역사가 담긴 기획이기에 대구미술관만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런 대규모 전시를 하게 되면 파생되는 기획이 무궁무진하거든요. <때와 땅> 전시 덕분에 캐나다 오타와 한국 문화원에서 이인성, 서동진, 전선택 3인의 작품전을 열게 됐어요. 대구 근대미술의 첫 해외 진출이라 감회가 더 새롭더라고요.
팬데믹으로 인해 미술관의 장기간 휴관 등 위기를 맞았어요. 대구미술관은 이 시기를 어떻게 이겨내려고 했나요?
처음 겪는 재난이었다면 우왕좌왕했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미술관에 재직하며 메르스, 신종플루, 세월호 등 많은 재난을 겪어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죠. 대구미술관은 오프라인 프로그램에 비해 빈약하던 온라인 프로그램을 확충하기 위해 곧바로 뛰어들었어요. 유튜브 채널에 ‘나의 예술세계’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했죠. 작가가 직접 자기 예술 세계를 얘기하고 작업실도 공개하는 방식의 영상인데 지금까지 수십 명의 작가가 참여했어요. 미술 애호가들은 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고, 작가도 본인 아카이브를 형성할 수 있기에 뜻깊은 작업이었죠.
동시에 오프라인 콘텐츠 ‘몰입’도 만드셨네요.
실감형 몰입 콘텐츠인 ‘몰입’을 개발하는 일에 총력을 다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모 사업에 선정되면서 추진한 콘텐츠인데, 대구미술관 소장품을 활용해 총 6편을 제작했어요. 3차원 홀로그램, 상호작용, 인공지능 등의 기술로 작가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거죠. 사방이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가 작품의 특정 요소들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벽면 터치 반응형 기술로 터치할 때마다 까맣게 먹이 번지기도 하고, 사과를 만지면 바닥으로 떨어지는 등 기존 작품이 디지털의 옷을 입고 시민들과 만나는 거죠. 공개하자마자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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