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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 인 더 시티 (2)

 

“간단하게 분식으로 때우자.” 일하다 보면 식사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바쁘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난 이 말이 제일 싫다. 왜 귀한 내 끼니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맛없는 것 먹고 살찌는 게 제일 싫다) 애정하는 분식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 않은가.

 

분식粉食. 말 그대로 ‘가루로 만든 음식’이란 뜻이다. 어렵던 시절에 쌀 대신 밀가루를 보급받아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던 시절이 있었다. 살림살이가 나아졌지만, 분식은 명맥을 유지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기는 음식이 되었다.

 

며느리도 모른다는 양념 맛에 적당히 퍼진 떡볶이, 집에서 말면 절대 그 맛이 안 나는 김밥, 그리고 왠지 감칠맛이 돋는 오뎅(어묵이라 하면 왠지 그 맛이 안 산다. 오뎅이다!) 국물, 푸짐한 인심의 칼국수까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진 노하우가 아닌 게 분명하다. 정확한 계량도 없이 세월이 알려준 ‘감’으로 만들어내는 마스터피스.

 

‘혼분식 장려 운동1960년대 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시행한 정부 주도의 식생활 개선 국민 운동’도 기억 속 아스라한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대구 사람들의 분식 사랑은 식을 줄 모른다. 대를 이어가는 노포들이 즐비한 데다, 대구를 시작으로 전국에 뻗어나간 프랜차이즈도 숱하다. 오죽하면 밀가루와 국수 소비량 전국 1위라는 말이 있을까. 대구를 찾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던 분식들 이야기.

 

수성구의 중독성 강한 맛, 윤옥연할매떡볶이

 

 

온통 짜고 매운, 빨간 음식 천지인 대구에서도 유독 떡볶이의 존재감은 엄청나다. 그중에서도 강한 후추 향이 인상적인 윤옥연할매떡볶이는 별것 없어 보이지만, 먹고 나서 돌아서면 또 생각나는 중독성 강한 떡볶이다. 그래서인지 ‘마약 떡볶이’라는 애칭이 생길 정도니 말 다 했다. 입구를 들어서자 ‘꼬순내’가 진동한다. 살짝 부풀어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오뎅튀김이 그 주인공. 운동화 밑창도 튀기면 맛있다고 방금 튀겨낸 오뎅 맛이 훌륭하다.

 

넉넉한 국물에 무심하게 한 스푼 얹어 나오는 극강의 소스가 이곳만의 신의 한 수. 원하는 만큼 섞어 맵기 조절이 가능한 DIY 스타일인데 국물에 튀김을 적시면 한결 맛이 중화되는 느낌이다. 더 이상 떡볶이가 서민 음식이 아니라고들 하지만, 그런 말 따위에는 아랑곳없이 고작 1,000~2,000원을 웃도는 이곳 메뉴판을 보면 살짝 미안해지기까지 한다.

 

 

변인자 대표의 시어머니이자 1대 대표인 윤옥연 여사의 레시피로 수십 년째 맛을 이어오고 있다. 요즘 찾아보기 힘든 저렴한 가격으로, 단돈 몇천 원이면 배를 듬뿍 채울 수 있다.

대구시 수성구 들안로77길 11

 

 

동성로의 추억, 미진분식 & 중앙떡볶이

 

 

대구의 명동이라는 동성로. 예전의 활기는 빛이 많이 바랬다지만 여전히 대구에서 제일 붐비는 곳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곳을 선택하겠다. 수성못 주변에는 가족 단위 식사가 가능하고 주차까지 용이한 식당들이 분포해 있다면, 동성로는 비교적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이를 위한 분식점들이 위치한다. 대구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입을 모아 소울 푸드라 칭송하는 미진분식과 중앙떡볶이가 바로 동성로에 있다. 빠른 회전율이 인상적인 미진분식. “여기 참 자주 왔다.” 함께 온 지인이 거든다. 고등학교까지 대구에서 나왔는데, 시내 구경 후 필수 코스였다고. 김밥과 쫄면, 우동, 비빔우동이라는 단출한 메뉴지만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어 작은 테이블이 늘 주문한 음식으로 가득했다.

 

고소한 맛이 일품인 김밥은 그 흔한 달걀과 햄도 없이 허술하게 말아낸 모양새라도 맛의 조화로움만큼은 인상적이다. 진하고 깊은 맛의 멸치 국물을 곁들이고, 매콤 새콤한 쫄면 양념에 적셔 먹는 것도 아는 사람만 아는 레시피란다.

 

 

동성로에서 약 45년간 자리를 지켜온 터줏대감 미진분식. 1978년 이진곤 대표가 개업한 후, 그의 며느리와 막내딸이 물려받아 한결 같은 맛을 지켜오고 있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 6-1

 

 

한편 동성로에서 제일 긴 줄이 보인다면, 그곳이 바로 중앙떡볶이일 가능성이 크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먹어 치우는 건 순식간일지라도 대구 올 때면 잊지 않고 들른다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다 보면 떡볶이 하나에 이럴 일이냐 싶지만, 맵고 단 맛의 가래떡 떡볶이와 납작만두 한 접시를 받아 들면 불만이 쏙 들어간다.

 

녹진하게 국물이 밴 납작만두에 떡볶이를 살포시 감싸 먹는 것이 별미라고. 연신 붐비는 실내에 합석은 기본, 그야말로 떡볶이로 대동단결해 불편도 감수한다.

 

두껍고 기다란 쌀로 만든 가래떡이 일품인 중앙떡볶이. 1979년 개업해 분점이나 체인점을 내지 않고, 2·28공원 옆 본점만 운영 중이다.

대구시 중구 동성로2길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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