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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는 늘 수장고가 있습니다. 전시되지 않은 작품들이 조용히 머무는 곳, 온도와 습도가 정교하게 관리되는 공간. 관람객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지만 미술관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생각 수장고>는 이 개념을 색다른 관점에서 소개합니다. 작품이 아니라 작품이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 즉 예술가의 생각과 질문, 관찰과 상상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말이에요. 전시는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상상력을 키워갈까?’ 질문은 단순하지만 그 답은 하나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이번 전시는 정답을 보여주기보다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보자고 제안하거든요.

 

 

<생각 수장고>는 이수인, 민성홍 작가의 설치, 조각 작품을 포함한 사진, 회화, 일러스트 등 국내외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예술적 사고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가 진짜 매력적인 순간은 감상 너머에 있습니다. ‘호기심의 방’, ‘미술 재료 연구실’, ‘생각 기획소’, ‘생각 창작소’, ‘비밀의 동굴’이라는 테마의 ‘생각 실험실’과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이 관람객을 맞이해주거든요. 예를 들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수채화로 그려보는 ‘수채화 지도’부터 눈앞에 놓인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며 드로잉해보는 ‘관찰 드로잉’, 파스텔을 이용해 하늘을 표현하는 ‘파스텔 모자이크’ 같은 활동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손을 움직이다 보면 자연스레 머릿속 작은 생각들이 하나씩 밖으로 드러나고, 그 속에서 새로운 상상이 피어오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관찰하고, 도전하며, 탐구하고, 끈기 있게 참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이자 우리가 일상에서 사고를 확장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결과보다 과정, 완성보다 사고

 

 

우리가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것들은 대부분 완성된 작품입니다. 그 옆에는 제목과 연도를 표기한 캡션이 배치되곤 하죠. 하지만 예술은 언제나 그 이전의 시간을 품고 있습니다. 수없이 바라보고 질문하고 시도하고, 때로는 실패하면서 쌓아온 시간입니다. <생각 수장고>는 이 보이지 않는 시간을 전면에 꺼내봅니다. 예술가의 작업을 하나의 선형적인 과정이 아닌, ‘관찰-질문-실험-실패-확장-재구성’이 반복되는 사고의 흐름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생각 수장고>에서 작품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닌, 생각이 잠시 머물다 간 흔적에 가깝습니다. 아이들에게 예술은 정답을 찾는 영역이 아닌 마음껏 상상하고 실패해도 좋은 영역이니까요. 이러한 감각을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조용히 건네며 묻습니다. 요즘 우리는 얼마나 자주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있을까요?

 

 

 


전시장은 수장고, 관람객은 탐색자

 

 

전시장은 수장고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구성됩니다. 하지만 철제 선반으로 가득한 폐쇄적인 창고를 떠올리면 오산입니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관람객이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생각의 저장소입니다. 여러 개의 소주제로 구성한 각각의 전시 공간은 예술가들이 생각을 확장하는 저마다의 사고방식과 리듬을 보여줍니다. 어떤 공간에서는 ‘관찰’이 중심이 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연결’이나 ‘상상’, ‘축적’이 키워드가 됩니다.

 

 

그래서 <생각 수장고>에는 사실상 정해진 관람 순서가 없습니다. 어떤 공간에서 오래 머물러도, 어떤 공간은 훅 지나쳐도 괜찮습니다. 생각은 늘 제각각의 속도로 자라니까요. 관람객은 자신의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자기만의 속도와 관점에 따라, 수장고 안에서 하나씩 자료를 꺼내 살펴보는 탐색자가 되는 셈이지요. 

 

 

 


설명은 줄이고, 질문은 남기기

 

 

이번 전시에서는 작품에 관한 설명이 꽤 절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어떤 생각의 단서가 있었는지를 여러 방식으로 전달해주지요. 관람객들이 상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긴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은 무엇을 표현했는지보다 어떤 질문에서 시작했는지를 먼저 알려줍니다. 또 다른 작품은 제작 과정의 일부, 혹은 작가가 남긴 메모를 보여줍니다.

 

 

작품을 무조건적으로 이해시키기보다는 생각의 출발점을 공유하려는 시도이지요. 덕분에 전시는 감상보다 대화에 가까워집니다. 작품을 보고 체험에 참여하며 질문을 던지는 동안 관람객은 어느새 전시의 일부가 되었을지도 몰라요. 일상에서는 쉽게 지나쳐버리는 관찰, 상상, 질문의 순간들을 세밀하게 붙잡아 보관하는 것이죠.

 

 

<생각 수장고>는 2026년 3월 8일까지 이어지지만, 전시가 끝난 뒤에도 이곳에서 꺼낸 생각들은 각자의 일상에서 계속 자라날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이 전시가 가장 오래 보관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완성된 답이 아니라 다시 열어볼 수 있는 질문들 말이에요. 

 

 

 


함께 보는 전시, 함께 자라는 생각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전시에서 체험은 늘 중요한 요소입니다. <생각 수장고>에서의 체험은 단순한 놀이를 넘어섭니다. 생각을 직접 움직여보는 실험의 장으로 나아가지요.

 

 

아이들은 놀이처럼 즐기며 참여할 수 있고, 어른들은 아이의 시선과 생각의 흐름을 들여다보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전시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소곤소곤한 대화와 웃음소리는 마치 한 편의 생각 놀이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물이 얼마나 잘 완성되었는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입니다.

 

 

 

Check Point!

 

1. 예술가의 사고 습관, 스튜디오 씽킹

2007년 하버드 교육대학원의 프로젝트 제로Project Zero 연구진은 미술 교육의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 스튜디오 씽킹Studio Think-ing이라는 교육 이론을 제안했습니다. 이 이론은 예술가들이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들 때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은 어떻게 길러지는지를 설명합니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사고 습관(Habits of Minds)을 탐구하는 스튜디오 싱킹(Studio-thinking) 방법론에서 출발했습니다. 전시실은 ‘관찰’, ‘상상’, ‘도전과 탐구’, ‘표현’, ‘참여와 끈기’, ‘성찰’ 등 예술가의 생각 습관을 바탕으로 한 각 실험실로 변신합니다. 

 

2. 붓질을 떼어낸다고? 머터리얼 라이브러리

2024년부터 시작된 ‘머터리얼 라이브러리’는 미술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생각을 연구하는 작가 콜렉티브입니다. 지금까지 10명의 작가가 참여하였고, 물감, 종이, 석고, 천과 같은 재료에서부터 작품의 생각을 열어주는 다양한 방식까지 폭넓게 실험하며 연구하고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 김신형 작가는 아크릴 물감에 ‘젤 미디엄’을 섞어 칠한 ‘붓질’을 새로운 미술 재료로 해석했습니다. 우리가 그림을 그릴 때 붓을 종이나 캔버스에 쓱쓱 칠하잖아요. <생각 수장고>에서는 붓질 자체를 떼어내서 손으로 들고 볼 수 있어요. 마치 붓 자국이 조각처럼 살아난 것 같달까요? 익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는 김신형 작가의 재료를 직접 경험해보세요!

 

3. <미술관, 오늘은 작업실>

이수인, 민성홍 작가의 작품 옆 공간 한편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전시도 놓치지 마세요! MOKA의 그림책 작가 지원 프로젝트 <언-프린티드 아이디어Un-printed Ideas에 참여한 오소리(1회), 전지나(4회), 차영경(3회) 작가와 함께하는 벽화 프로젝트입니다. 주로 작업실 책장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 작가들이 이번에는 미술관 벽 앞에 섰습니다. 큰 벽화 앞에 서면 작가들이 붓을 들고 작업하는 생생함이 느껴집니다. 작가들의 그림책, 그리고 벽화 작업 영상을 보며 그 에너지를 직접 느껴보세요!

 


 

<생각 수장고>

 

📅 2025년 12월 16일~2026년 3월 8일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전시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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