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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알폰스 무하는 평생에 걸쳐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제시한 인물입니다. 그는 “예술가의 사명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조화를 사랑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술이 대중의 마음을 고양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믿었죠. 자신의 그림이 ‘예술을 위한 예술’ 속에 갇히기보단 사람들의 삶 속으로 흘러 들어가기를 바랐습니다. 나아가 자기 자신과 민족의 뿌리에 진실하고자 힘썼습니다. 화려한 선과 장식, 몽환적 색채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무하는 자신의 예술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시대를 밝히는 등불로 삼고자 했어요

 

 

“나의 예술이 소수만을 위한 응접실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것이어서 행복했다. 그것은 비싸지 않았기에 누구나 손에 쥘 수 있었고, 가난한 이의 집과 부유한 이의 저택 모두에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
알폰스 무하

 

 

 

 

한국-체코 수교 35주년을 기념해 더현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알폰스 무하: 빛과 꿈 The Artist as Visionary〉는 이러한 그의 세계를 총망라합니다. 드로잉, 일러스트레이션, 석판화, 조각, 사진, 주얼리, 서적 등을 넘나들며,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이상을 구상화한 무하의 예술 여정을 전해줍니다. 전시 초반부에 펼쳐지는 사라 베르나르와의 협업 작업을 보면 예술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상상력을 확장하는지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더욱 눈여겨봐야 할 지점은 그 이후의 무하입니다. 아르누보의 대명사였던 그가 아름다움의 생산자라는 역할을 넘어 민족, 역사, 자유라는 더 큰 서사의 담지자로 변모하거든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소녀와 튤립 Girl with Loose Hair and Tulips, 1920, 캔버스에 유채, 76.8 x 66.9 cm ⓒ Mucha Trust 2025

 

 

 

전시장 후반부를 가득 채운 <슬라브 서사시>의 드로잉과 자료들은 그의 사명이 향하는 곳을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화려함보다는 숭고함으로 나아간 행보, 예술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일으켜 세우려는 태도, 그리고 이를 평생의 프로젝트로 삼은 그의 집념이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죠. 무하를 아르누보로만 기억한 사람들에겐 이번 전시가 특별히 의미 있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세계가 어둡고 복잡해질수록 예술은 더 멀리, 더 깊은 곳을 비춘다는 무하의 정신적 지향에 스며들게 될 테니까요. 수많은 관람객이 그의 작품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는 이유도 무하의 세계 안에서 아름다움과 신념, 책임이 동시에 반짝이는 지점을 발견하기 때문일 거예요. 알폰스 무하에게 예술은 민족과 역사를 잇는 서사적 언어였고, 아름다움은 그 서사를 전달하기 위한 통로였습니다

 

 

“예술가는 빛을 보고 꿈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 알폰스 무하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18601939)


체코 공화국 남모라비아 지방의 작은 마을 이반치체에서 태어난 예술가. 1890년대 파리에서 포스터 작업을 맡으며 시각 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매혹적인 이미지와 혁신적인 타이포그래피, 치밀하게 계산한 화면 구성은 이른바 ‘무하 스타일(le style Mucha)’로 불리며 광고 예술과 시각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세계적 예술가로 활동했으나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체코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이 자리했다. 예술 세계의 중심에는 언제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정치적·문화적 자주성을 향한 비전이 있었다. 후기 대작 <슬라브 서사시(The Slav Epic, 19121926)>는 그 비전의 결실이자 예술적 사명의 정점이다. 알폰스 무하는 예술의 보편성과 소통의 힘을 믿었으며, 그 힘을 통해 식민과 전쟁으로 분열된 슬라브 민족의 정신적 통합과 평화에 기여했다.

 

 

 

Interview
존 무하John Mucha - 알폰스 무하의 손자, 무하 트러스트 보호인The Protector of Mucha Trust

 

 

ㅡ 조부 알폰스 무하의 작품은 아름다움뿐 아니라 정신성으로도 사랑받습니다. 오늘날 선생님께서 가장 깊이 공감하시는 무하의 예술 철학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듯이 지금 세계는 정말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미래에 큰 물음표가 떠 있는 상태죠. 할아버지가 항상 말씀한 ‘예술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다리를 놓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다리를 놓는 것. 이 지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새로운 다리를 하나 놓아주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더라도 이 공간이 일종의 사원 같은 곳이 되어, 나갈 때에는 조금이라도 균형을 되찾는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ㅡ 알폰스 무하의 영향력이 오늘날 예술과 어떤 문화적·감성적 연결점을 갖는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그를 흔히 아르누보 시대의 예술가로 알고 있어요. 저는 1960년대에 10대였어요. 비틀즈, 롤링 스톤즈가 활약하던 그 시대 말이에요. 그 시기 아르누보가 다시 유행처럼 돌아왔고, 무하는 당시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로스앤젤레스의 스탠리 마우스. 그가 맡은 그레이트풀 데드, 재니스 조플린의 공연 포스터 디자인은 무하에게서 영감받은 것이죠. 또 우리는 몇 년 전 일본에서 여러 번 대규모 전시를 열며 만화의 세계를 특별히 다루기도 했어요. 서울에서 선보인 지난 전시도 그 연속선상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파이널 판타지를 만든 아마노 요시타카 역시 무하의 영향을 받았지요. 이러한 흐름이 바로 무하의 영향력입니다

 

 

ㅡ 이번 전시는 무하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여행형 구성이 특징입니다

시각적인 요소와 텍스트가 잘 어우러진 구성으로 관람 동선을 이끌어줍니다. 전시 후반부에는 일종의 오디오 비주얼 섹션이 있어요. 여러분도 흥미롭게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팀이 직접 프라하에 와서 촬영한 작업물입니다. 저도 나오고, 큐레이터 사토 토모코도 나오고, 제 프라하 집의 일부도 나옵니다. 저희팀은 이번 전시에서 정말 훌륭한 작업을 해냈습니다. 매우 인상적입니다. 사람들은 제게 말하곤 하죠. “전시 개막을 그렇게 많이 했으면 이제 지겹지 않나요?” 저는 대답합니다. “아닙니다.” 물론 보는 이미지들은 비슷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악적 비유를 하자면, 작품은 ‘교향곡을 위한 악보’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휘자예요. 같은 악보라도 지휘자마다 전혀 다른 관점을 만들어냅니다.

 

 

 

물리적 한계를 넘어 슬라브 서사시를 전하는 장내 미디어 월.

 

 

 

Interview
사토 토모코Tomoko Sato - 알폰스 무하 재단 수석 큐레이터

 

ㅡ 이번 전시에서 미디어 아트를 통해 <슬라브 서사시>를 조망합니다. 이 섹션의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한국의 관객들이 슬라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저는 과거 두 차례 감독으로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고, 그때부터 슬라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 관해 고민해왔어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무하는 파리에서 1895 <지스몽다> 포스터로 이름을 알렸지만 사실 그 시기는 짧았습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이후 그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느꼈어요.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 즉 자신이 슬라브인으로서 동포와 인류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시기 슬라브 국가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독립운동이 아주 중요한 시대적 주제였습니다. 한국인에게도 이런 역사적 감정이 공감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일본인으로서 이런 역사적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에 관람객들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알폰스 무하를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슬라브 서사시>를 이루는 작품 20점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 ‘슬라브 민족이 인류에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담은 기록입니다. 이 연작을 통해 무하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예술이 인류를 하나로 묶는 보편적 언어가 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무하는 단지 스타일리시한 포스터 아티스트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예술이 사회 안에서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를 고민한 인물이죠.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그가 추구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하고 싶었습니다.

 

 

ㅡ 큐레이터님이 알폰스 무하를 연구하기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저는 영국에서 미술사를 공부했고, 대학원에서는 큐레이터 양성 과정을 밟았어요. 그 과정에서 19세기 유럽 미술, 특히 아르누보와 자포니즘에 관심을 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예술이 서구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던 중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지금 저의 상사인 존 무하를 만났습니다. 그가 “체코 출신의 알폰스 무하에 관한 전시를 함께 기획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당시 저는 무하를 포스터 아티스트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프라하에 직접 방문하면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의 세계가 얼마나 깊고, 슬라브 문화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깨닫게 된 거죠. 이후 저는 무하의 예술세계를 단순한 스타일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메시지에는 인간의 자유, 존엄,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이 담겨 있습니다.

 

 

<알폰스 무하: 빛과 꿈 The Artist as Visionary> 전시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무엇인가요?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는 그가 파리에서 성공한 이후 돌아와 자신의 민족과 정체성을 위해 헌신한 결과물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 시대의 역사화는 이미 낡았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시대를 거슬러 예술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그 안에는 자신이 믿는 인간애와 평화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전시가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나 아티스트들에게도 영감을 주길 바랍니다. 예술은 언어와 국경을 넘어 서로의 마음을 연결할 수 있습니다. 무하가 그랬던 것처럼요.

 

 

 


📍Check Point


1 
체코 국보 11, 국내 최초 공개 작품 70여 점

월드 투어의 일환인 이번 특별전은 알폰스 무하 전시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하 트러스트가 소장한 패밀리 컬렉션에서 엄선한 유화 18점을 비롯해 무하의 상징적 석판화·드로잉·조각·보석·소품 등 총 143점의 걸작을 한자리에서 선보여요. 특히 체코 국보로 지정된 11점은 이번 전시를 위해 체코 정부와 EU의 반출 승인을 받은 작품으로, 주한체코대사관과 무하 트러스트와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성사되었다고 해요. 유화 <희망의 빛>, <슬라비아>, 조각 작품 <자연의 여신>을 포함한 국내 최초 공개작은 70여 점에 달하죠. 〈슬라브 서사시〉 섹션에서는 아카이브 자료와 이머시브·멀티 미디어·사운드 아트를 통해 20점 대작의 숨은 이야기를 새롭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무하 트러스트가 함께한 특별 기획
이번 전시는 무하의 예술 철학과 유산을 보존·연구하는 공식 신탁 기관인 무하 트러스트와 긴밀하게 협력해 기획했습니다. 알폰스 무하의 손자이자 무하 트러스트 대표인 존 무하와 큐레이터 사토 토모코가 기획에 직접 참여해 더욱 깊이 있는 전시를 완성했어요. 무하를 사랑하는 한국 관람객을 위해 프라하에서도 보기 어려운 유화 18점이 체코와 런던에서 특별 공수되기도 했죠. 알폰스 무하의 회화적 감수성을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입니다


3 
프라하 ‘무하 하우스’ 최초 공개

지금까지 일반에 공개하지 않았던 프라하의 ‘무하 하우스’를 국내 최초로 소개합니다. 무하 하우스는 3대째 무하의 유산을 보존하고 있는 개인 저택으로 미공개 작품과 습작, 그리고 화가 폴 고갱이 연주하던 하모니움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다. 무하의 손자인 존 무하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 작가의 삶과 예술 세계를 담은 영상도 함께 선보여 예술가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요.

 

 

 

알폰스 무하: 빛과 꿈 The Artist as Visionary

- 2025. 11. 8 (토) - 3. 4 (수)

- 더현대 서울 6층 AL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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