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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살 소년의 소박한 꿈이 93세의 거장의 대규모 회고전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문화홀에서 열리고 있는 <미셸 들라크루아: 영원히, 화가> 전시는 평생 붓을 놓지 않았던 한 화가의 삶을 예술이라는 언어로 가장 찬란하게 빚었습니다. 작가의 생애 흐름과 맞게 음악이 흘러나오는 이번 전시는 개인의 회고전을 넘어 ‘예술로 산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하게끔 합니다.

 

 

 특히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120여 점의 작품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최근작입니다.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2023년에서 2025년 사이의 신작 80여 점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전보다 더 깊고 단단한 울림을 전합니다.

 

 

 그는 “다음 생에도 나는 화가일 것입니다. 더 나은 화가로 태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전합니다. 이 고백은 단순한 직업적 선언이 아니라 삶 전체를 예술로 살아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요. 노년의 작가가 여전히 붓을 든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남깁니다. 예술은 결국 끝없는 자기 발견의 여정이며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말이죠.

 


 

알레그로에서 아다지오까지,

인생의 리듬을 그리다

 

이번 전시는 미셸 들라크루아의 예술 여정을 음악의 흐름처럼 구성했습니다. 작품은 단순히 시간 순으로 나열되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의 감정과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쌓이고 변화하는지를 따라가는 듯한 전개입니다.

‘알레그로’는 한 소년이 세상의 빛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대표작 ⟪장밋빛 인생⟫은 유년기의 파리를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그곳의 사람들은 시간 속에 머물고, 도시는 기억보다도 더 아름다운 색으로 반짝입니다.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 ⓒ Michel Delacroix

 

이어지는 ‘모데라토’에서는 삶의 안정된 리듬이 그려집니다. 가족, 반려견, 도시 파리. 익숙함 속에서도 여전히 놀라운 일상이 담긴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탕플 대로의 회전목마⟫는 그저 거리의 풍경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원형처럼 다가옵니다. “내가 그리는 파리는 실제의 도시가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감정의 도시입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탕플 대로의 회전목마 Les Chevaux de Bois Blvd du Temple, 2023 ⓒ Michel Delacroix

 

세 번째 장 ‘안단테’에서는 계절과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부드럽게 흐릅니다. ⟪달빛 소나타⟫ 속 여름밤 아이와 강아지가 해변을 걷는 장면은 무엇보다도 사적이고 조용한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누구에게나 있는 그리운 한 시절, 들라크루아는 그 찰나를 붙들어 추억하게끔 합니다.

 

달빛 소나타 La sonate au clair de lune, 2024 ⓒ Michel Delacroix

 

마지막 ‘아다지오’에 이르면 작가의 시선은 더욱 고요하고 깊어집니다. ⟪좋은 빵집 앞 군밤을 파는 상인⟫ 은 도시의 겨울을 그렸지만, 그림 속에는 분명 따뜻한 체온이 느껴집니다. 흰 눈, 익숙한 반려견 칼리, 그리고 그 곁에 늘 있는 작가의 시선. 이 계절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처럼 보입니다.

좋은 빵집 앞 군밤을 파는 상인 Au bon pain (marchant de marrons), 2024 ⓒ Michel Delacroix

 

 

 

 

함께 살아낸 존재들

반려견, 도시, 그리고 자신

 

미셸 들라크루아의 작품에는 언제나 반려견이 등장합니다. 유년기의 ‘퀸’과 현재의 ‘칼리’는 단순한 동물이 아닙니다. 그는 “그림을 완성하면 먼저 퀸을 그립니다. 그리고 나서야 제 이름을 씁니다”라고 하죠. 반려견은 그의 정체성과 예술의 일부이자 그가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사적인 방식입니다. 종종 들라크루아는 본인은 ‘시적으로 과거를 그리는 화가’라고 말합니다. 그의 회상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감정을 곱씹으며 새롭게 구성한 기억의 정원임을 암시하죠. 관람자는 작품을 바라보며 각자의 시간을 떠올리고 자신만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수와송으로 가는 길, 저녁 Route de Soissons, le soir 2025 ⓒ Michel Delacroix

 

 

예술로 살아낸 시간,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응원

 

이 전시는 일견 한 화가의 긴 삶에 대한 결산처럼 보입니다. 더 본질적으로 들여다볼까요? 무엇을 사랑하며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일지, 들라크루아는 일흔이 넘어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으며 아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화폭에 담아냈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삶의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던 태도가 스며 있습니다.

 

단지 우리 둘 뿐 Just the Two of Us, 2004 ⓒ Michel Delacroix

 

 

그가 전시를 위해 보내온 앞치마에는 ‘천국에도 가져가고 싶은 물건’이라는 메모가 함께 붙어 있었습니다. 그 한마디는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을 가장 진실하게 드러냅니다. 이 전시는 그림을 보며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삶의 동력’ 다시 말해 ‘다시 살아갈 이유’를 다시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의 그림 앞에 선 우리는 어렴풋이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을 끝까지 지키는 삶이야말로 가장 깊은 예술이 된다는 것을요.

 

프랑스 만세! Vive la France !, 2023 ⓒ Michel Delacroix

 

 


 

 

 

✅CHECK POINT

 

1.음악처럼 흐르는 전시, 감정의 악장을 따라 걷다

 

파리의 길들 Les rues de Paris, 2024 ⓒ Michel Delacroix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지 않은 점이 눈길을 끕니다. ‘알레그로’부터 ‘아다지오’까지, 음악의 흐름처럼 구성된 전시 공간은 들라크루아의 감정과 기억이 어떻게 쌓이고 변해왔는지 보여줍니다. 이 전시는 감정의 리듬에 발맞춰 천천히 걸으며 함께 느껴보는 시간이 될 겁니다. 작품을 더 풍부하게 누리려면 전시 공간에 들어서며 이어폰을 빼고 귀를 활짝 열어도 좋겠습니다.

 

 

2. 기억보다 따뜻한 풍경, 들라크루아만의 화풍

 

몽마르트르, 저녁 A Montmartre, le soir, 2023 ⓒ Michel Delacroix

 

들라크루아는 실제의 도시보다 기억하고 싶은 감정의 도시를 그렸습니다. 그의 그림에는 늘 따뜻한 빛이 있고 익숙한 거리나 계절의 한순간이 담겨 있어요. ‘그림 속 파리’는 어쩌면 우리의 마음속 풍경일지도 모릅니다. 그가 사랑했던 존재들, 반려견이나 가족, 도시의 소음까지도 그리움처럼 담아냈거든요.

 

 

3. 붓을 놓지 않는 삶, 그 자체가 예술이 될 때

 

흰 캔버스 La toile blanche, 2023 ⓒ Michel Delacroix

 

93세의 들라크루아는 여전히 그림을 그립니다. ‘다음 생에도 화가일 것’이라는 고백이자 포부는 그가 얼마나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정진해 왔으며 그 시간이 그림 안에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전시를 보고 나면 문득 나도 ‘끝까지 붙잡고 싶은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미셸 들라크루아: 영원히, 화가>

🗓️기간: 25.05.24(토) ~ 25.08.31(일)
📍장소: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
⏰관람 시간: 10:30~20:00(월~목) / 10:30~20:30(금~일)
‼️입장 마감: 전시 종료 30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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