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바다 이야기
부산 감천항에 명란을 실은 배가 정박해 있다. 덕화푸드로 들어갈 명란이다. 명란은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이다. 덕화푸드는 짭조름하고 담백한 명란 맛에 담긴 역사의 아픔과 고난을 안다. 1993년에 시작한 덕화푸드는 부산을 기지로 우리나라 명란의 역사를 발굴하며 명란의 맛을 개발해가고 있다. 국내 수산제조 부문 명장 제1호인 고 장석준 선대 회장이 포문을 열고, 그의 뒤를 이어 수산식품명인 제11호인 아들 장종수 대표가 만들어가는 명란은 오랜 세월을 품은 유구한 바다 이야기다.
덕화푸드는 창업주이자 부친인 고 장석준 선대 회장이 배움에 대한 열망과 성공을 향한 의지로 부산을 제2의 고향이자 터전으로 삼으며 움트기 시작했다고요.
맞습니다. 아버지께서는 1945년생이세요. 그해에 태어난 아이를 ‘해방둥이’라고 하는데, 경북 산골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셨죠. 지금으로 치면 대구 바로 아래 청도쯤이에요. 학교를 가려 해도 산 하나를 넘어야 했죠. 우리나라는 1960년대부터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동했는데, 그 초창기 세대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시기에 서울·부산 같은 대도시로 가는 사람이 많았는데, 아버지께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산으로 내려오신 거예요. 65학번으로 부산국립수산대학(현 국립부경대학교)에 입학해 생선을 처음 제대로 봤다고 하셨어요. 오랜 역사를 이어가는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도 부산국립수산대학 출신일 만큼 해양 수산 분야로 명성이 자자한 학교였죠. 그곳에서 제조 가공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생산 책임자이자 초창기 멤버로 입사한 회사가 ‘삼호물산’이었어요. 우리나라 해양 수산 역사를 개척해나간 중요한 기업이죠. 당시 국내에 유통되던 명태의 절반 이상을 삼호물산이 취급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명태 사업에 특화된 기업이었어요. 고도성장기에 아버지께서는 공장장, 전무, 상무로 승진하며 쭉 일해오시다가 삼호물산이 부도가 나면서 1993년 수산 가공 라인을 인수해 만든 것이 지금의 덕화푸드예요.
선대 회장께서 일궈온 덕화푸드는 한국·일본식 저염 명란 제조법을 모두 섭렵하며 2010년대에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명란 제품이자 일본 명란 시장에서 가격 결정을 주도하는 프라이스 세터로 자리매김하는 결과를 냈어요. 이 같은 업적을 이루기까지 특히 어떤 부분에 노력을 기울였나요?
아버지께서는 평생 생산 기술자로 살아오신 분이에요. 우선, 짜고 비리다는 명란의 인식을 각고의 노력으로 변화시켜나갔죠. 8~12%인 염도를 4%로 낮추고, 맑은 청주를 가미한 3일 저온 숙성법을 개발해 비린내를 제거했어요. 재래식 명란은 염도가 7~15%로 쉽게 상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긴 편인데, 저염 명란의 경우 냉동 보관을 해야 할 만큼 신선도 유지가 어렵고 유통기한도 짧죠. 그만큼 양념 맛이 아닌 명란 고유의 맛을 살리고자 최상의 품질을 사용하고 첨가물을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셨어요. 아버지께서는 일본 기술자와 교류하며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명란 제조법을 개발해 수출도 하셨어요. 일본의 까다로운 요구에 맞춰 좋은 제품을 만들었고, 마침내 명란의 맛과 품질을 인정받아 2009년 일본 세븐일레븐의 자체 브랜드 상품 납품 업체로 선정되면서 날개 돋친 듯 팔렸죠. 당시 세븐일레븐은 일본 전역에 편의점은 물론 대형 마트와 백화점 등을 거느린 유통 공룡 같은 존재였어요. 명란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컨베이어 벨트도 아버지께서 직접 맞춤형으로 설계하셨어요. 그 기계는 일본에도 없고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어요.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아버지의 부름으로 2006년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고요. 2000년대의 덕화푸드는 기업으로서 어떤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나요?
2006년 11월 11일에 덕화푸드의 자가 공장이 설립됐어요. 제가 볼 땐 아버지께서 당시 덕화푸드의 다음 스텝을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아요. 그즈음에 1,0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했지만 일본 수출을 믿고 나아가기에는 리스크가 있지 않을까, 국내시장을 조금씩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자가 공장을 처음으로 설립하셨거든요.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명란 단일 제조 공장은 사실 당시에도 지금도 유일무이할 거예요. 당시 같이 열심히 일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래도 아들이 낫지 않나 싶어 저를 부르셨다고 생각해요.
덕화푸드에 들어와서는 ‘브랜딩’이라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다고 들었어요.
2006년 11월 덕화푸드 공장이 완성되고 들어와 둘러보니 명란 제품에 이름이 없는 거예요. 수출 중심으로 운영하다 보니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은 선물용 목상자 제품군을 중심으로 1~2종류뿐인 데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었어요. 그래서 제품 이름을 지으며 소위 브랜딩을 시작하게 됐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품마다 어떤 차별성을 두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했고요. 이후 패키지 디자인을 변경하고,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회사 이름도 ‘덕화유통’에서 ‘덕화푸드’로 바꿔나가는 작업을 해갔어요. 그렇게 브랜딩을 해나가며 처음 만든 제품이 ‘청주로 빚어낸 저염명란’이었고요. 저염과 청주로 차별화를 시도한 제품이죠.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배너 클릭하기▼
'LOCAL'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대표 스트리트 패션 편집숍, 이플릭 윤동원 (0) | 2025.02.17 |
---|---|
엄마와 딸을 잇는 도자, 사이에 포터리 이미옥 & 김민지 (0) | 2025.02.17 |
커피의 가치를 전하다, 모모스커피 전주연 대표 (0) | 2025.02.12 |
어묵의 본질과 가치, 삼진어묵 박용준 대표 (0) | 2025.02.12 |
돌아와요 부산항에, 로컬브랜드 숍 '끄티 현대' 김철우 대표 (0) | 2025.02.03 |